'북한 총공격' 알리고도 '간첩 옥살이'…억울한 한인
한국전 당시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무죄판결을 받은 가주 출신의 홍윤희(83.사진)씨가 이번에는 4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부장판사 이인규)는 지난 24일(한국시간) "국가는 홍씨에게 4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군인들이 홍씨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로 작성된 신문조서 등을 근거로 실형을 선고했다"며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홍씨가 노력한 기간, 국가의 불법행위 내용 등을 고려했다"고 공개했다. 1950년 7월, 당시 육군간부 후보생으로 입교하기 위해 육군본부에 대기중이던 홍씨(당시 20세)는 한강철교가 폭파되고 인민군이 서울에 침입하면서 고립됐다. 신당동 친구 집에 숨어 있던 그는 국군이란 신분을 숨기고 북한 의용군에 위장 입대했다. 위생병으로 대구까지 내려간 홍씨는 그해 8월 소속 인민군 부대가 부산 인근까지 남하하는 과정에서 '인민군 9월 총공격 지시'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8월31일, 목숨을 걸고 탈출해 국군에 귀순하면서 이 정보를 넘겼다. 홍씨는 유엔군사령부에서 이 정보를 브리핑까지 했으나 열흘 뒤 그는 간첩 혐의로 연행됐다. 그리고 온갖 고문 끝에 기소돼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두 차례 감형으로 55년 출소했다. 석방된 그는 정부의 감시에 못 이겨 1973년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수퍼마켓과 식당 등을 운영하며 이민자의 삶을 살던 그는 1989년 일본 사학자 고지마의 '조선전쟁'을 보게 된 계기로 본격적인 자료조사에 나섰고 지난 2012년에는 한국을 방문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전쟁사 자료인 '로이 애플먼 컬렉션'을 살펴보게 됐다. 이 컬렉션에서 1950년 당시 자신이 인민군 9월 총공격 계획을 제보했고 미군이 이를 중요 정보로 취급했다는 정황이 담긴 메모를 발견했다. 홍씨는 이 메모를 근거로 재심을 신청했고 결국 서울중앙지법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63년 만인 지난해 2월 홍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홍씨는 재판 결과에 대해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도왔다는 진실을 입증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결국 한국전 발발 64주년을 앞두고 발표된 이번 배상판결로 인해 그는 조국을 배신한 '간첩'에서 '목숨을 걸고 중요한 첩보를 제공한 애국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신승우 기자